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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정보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중 노예해방선언을 한 이유

by 할추 2014. 11. 1.
 
 

목차

     

    링컨대통령이 남북전쟁중 노예해방선언을 한 이유

    미국의 남과 북 사이의 전쟁이 격렬해지면서 종전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1862년 여름, 연방 정부군이 불런의 제2차 전투에서 패하자 북부 연방의 진영은 암울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9월 17일, 메릴랜드의 앤티텀 전투에서 북부군이 승리하며 마침내 남부 연합군을 포토맥 강에서 버지니아가지 밀어냈다. 이날의 전투는 남북전쟁에서 가장 출혈이 컸다. 링컨 대통령은 9월 22일 국무회의를 열었고 노예 해방 예비 선언문을 고문들에게 제시했다.

    공식적인 노예 해방 선언은 1863년 1월 1일에 발표되었으며 예비 선언과 달리 해당 지역을 남부로만 한정했다. 이는 의회에서 노예 해방을 반대해 반람에 가담한 주들의 재산 몰수 및 반람군의 노예 반환 금지만 허가했기 때문이었다.

    북쪽의 노예 폐지론자들은 반란에 가담한 주들에 대해서만 내려진 포고령의 범위제한으로 대통령을 비판했는데, 이는 북쪽의 노예 소유자들에게는 그 어떤 법적 제재도 확실히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링컨은 남북전쟁 동안 노예해방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1865년 1월 31일, 노예 해방 선언 2년후, 의회는 열세번째 미국 헌법 개정을 통과시키면서 미국전체의 노예제를 금지시켰다. 링컨은 이 헌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연방이 승리(1865년 4월 9일)할 때까지 연합주들은 400만이나 되는 노예들을 해방시키지 않았다.